동의보감의 ‘정’, 정액만을 뜻하는 말일까요?
한방노트 편집팀게시 수정
3줄 요약
- 1『동의보감』 내경편 제2장 ‘정’은 정액뿐 아니라 몸을 이루고 생명을 이어 가는 바탕을 다룹니다.
- 2정 장은 음식과 마음을 몸의 바탕에 연결하며, 몽정을 모두 같은 문제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 3정 장은 정을 귀하게 지키라고 하면서도, 겉으로 비슷한 현상에 무조건 같은 처방을 쓰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목차
‘정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기운이 없다는 뜻인지, 정액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내경편 제2장의 이름은 ‘정’입니다. 정은 이 책에서 몸을 이루고 생명을 이어 가는 바탕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생식과 관련된 정액을 가리키는 대목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장 전체를 이해하면 이야기가 너무 좁아집니다.
지난 신형 편에서 몸을 작은 우주와 한 나라에 빗대었다면, 이번에는 그 몸을 무엇이 받쳐 주는지 살펴봅니다.

‘정’은 정액과 같은 말인가요?
정 장의 첫머리는 정을 ‘몸의 근본’으로 설명합니다. 몸이 만들어지는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곡식과 음식에서 얻는 진액도 몸을 채우고 기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액은 여기서 몸을 적시고 기르는 여러 액체를 가리키는 옛 의학 용어입니다.
뿌리가 나무를 받쳐 주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뿌리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나무가 자라는 데 중요한 바탕입니다. 원문이 정을 중요하게 여긴 까닭도 몸의 겉모습 뒤에 있는 생명의 바탕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비유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 덧붙인 설명입니다.
다만 정이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범위가 달라집니다.
| 원문에서 다루는 이야기 | ‘정’을 이해하는 길 |
|---|---|
| 몸이 만들어지는 근본 | 생명을 이루는 바탕 |
| 음식이 몸을 기르는 과정 | 몸을 채우는 바탕 |
| 여러 장부에 저장된 정 | 몸의 여러 기능과 연결된 바탕 |
| 생식과 정액 배출 | 정액을 포함한 생식의 이야기 |
장부는 옛 의학에서 몸속 기관과 그 기능을 묶어 설명하던 말입니다. 이처럼 정은 정액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언제나 정액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을 현대의 호르몬, 영양소, 유전자 중 하나와 같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 정을 몸의 ‘보배’라고 불렀을까요?
두 번째 대목은 정을 귀중한 보배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보배라는 말은 값비싼 물건처럼 귀하게 여기고 함부로 소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원문은 정·기·신을 서로 이어진 것으로 봅니다.
- 정은 몸과 생명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 기는 몸의 활동과 기능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 신은 정신과 의식 활동 등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정이 충실하면 기가 힘을 얻고, 기가 힘을 얻으면 신도 왕성해진다고 설명합니다. 몸의 바탕, 몸의 활동, 정신의 활동을 따로 떼어 놓지 않은 것입니다.
원문에는 몸속 정의 양을 옛 부피 단위로 적거나, 정을 잘 지키면 오래 산다고 설명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옛사람들이 정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보여 줍니다.
‘보배’라는 표현 때문에 몸이 조금만 변해도 큰일이 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장이 무엇을 귀하게 보았는지 이해하는 말로 읽으면 됩니다.
몸의 바탕을 채우는 음식은 특별해야 할까요?
‘정을 음식물로 보할 때’라는 대목에서는 뜻밖에 평범한 밥과 죽이 등장합니다. 보는 부족한 것을 채우거나 돕는다는 말입니다.
원문은 정이 곡식에서 생긴다고 설명하며, 화려한 음식보다 담백한 곡식 음식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오곡’은 여러 곡식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특별한 약이나 귀한 재료가 먼저 나올 것 같지만, 이 대목에서 주목하는 것은 매일 먹는 음식이 몸을 기르는 바탕이라는 생각입니다. 몸을 돌보는 이야기가 익숙한 밥상으로 내려오는 순간입니다.
특정 음식의 효능을 말하기보다, 매일의 식사가 몸의 바탕을 만든다고 본 것입니다.

몽정을 모두 병으로 보지는 않았나요?
이 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몽설이 심에 속할 때’입니다. 몽설은 자는 동안 정액이 배출되는 일을 가리키며, 오늘날 흔히 말하는 몽정과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원문은 이를 무조건 같은 문제로 묶지 않습니다. 물을 담은 병 세 가지에 비유해 구분합니다. 여기서 병은 질병이 아니라 물을 담는 그릇입니다.
| 원문 속 비유 | 당시 설명하려던 차이 |
|---|---|
| 물이 가득 차서 넘치는 병 | 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며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 경우 |
| 기울어져 물이 흐르는 병 | 정을 지키는 기능이 흔들린다고 본 경우 |
| 깨져서 물이 새는 병 | 몸의 바탕이 오래 약해졌다고 본 경우 |
첫 번째 경우에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적은 점이 눈에 띕니다. 원문도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현상을 모두 병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표는 옛 문헌의 비유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분류하는 기준으로 쓰기보다, 당시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참고하면 됩니다.

몸의 이야기인데 마음이 왜 등장할까요?
정 장은 정을 저장하는 기능뿐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도 함께 설명합니다.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이 움직이면 몸의 반응도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이 대목에는 ‘심’과 ‘화’라는 말이 나옵니다. 심은 여기서 심장이라는 기관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작용을 함께 설명합니다. 화는 불이라는 글자이지만, 실제로 몸속에서 불이 타오른다는 뜻보다는 들뜨고 움직이는 작용을 나타내는 옛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원문은 정에 관한 문제를 생각할 때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려 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보려는 설명입니다.
이 부분은 옛 의학이 몸을 설명하면서 마음의 반응까지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지키는 것’과 ‘무조건 막는 것’은 다를까요?
원문은 정을 잘 간직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른 대목에서는 무조건 막으려는 치료를 경계합니다.
‘몽설이 울에 속할 때’에는 정이 흐르는 현상을 멎게 하려는 약을 썼지만 오히려 상태가 나빠졌다고 기록한 사례가 나옵니다. 여기서 울은 무언가 막혀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옛 용어입니다.
원문에 나오는 ‘삽한 약’은 흐르거나 새는 것을 거두고 멎게 하려는 약을 뜻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막힌 것을 더 막으면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책 안에서도 ‘귀하니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그렇다고 무조건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 같다고 원인과 대처까지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이 사례를 읽는 핵심입니다.
옛 처방과 수련법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정 장의 뒤쪽에는 여러 처방, 한 가지 약재를 쓰는 방법, 몸을 움직이거나 문지르는 수련법, 침과 뜸을 쓰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처방 이름만 보면 ‘정을 채우는 약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원문 자체도 상태를 구분해 서로 다른 접근을 설명합니다.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경우와 보하는 약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경우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옛 처방과 수련법은 400년 전의 기록입니다.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실제 약 복용이나 치료는 진료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정 장을 읽고 어떤 생각을 가져가면 좋을까요?
정 장을 ‘정액을 아끼라는 장’으로만 읽으면 음식과 마음, 몸의 여러 기능에 관한 이야기를 놓치게 됩니다.
이 장은 몸의 바탕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겉으로 비슷한 현상에 서로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기록으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정의 뜻을 살피고, 평범한 밥상을 만나고, 세 개의 물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낯선 용어도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책을 덮으며 남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의 말만으로 너무 빨리 단정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다음 장에서는 정과 함께 자주 등장한 ‘기’를 더 자세히 읽어 보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동의보감의 정은 정액과 같은 뜻인가요?
정액을 가리키는 대목도 있지만 뜻이 그것에만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정 장은 몸이 만들어지는 바탕, 음식이 몸을 기르는 과정, 여러 장부의 기능과 연결된 정을 함께 설명합니다. 현대의 특정 물질 하나와 같은 뜻으로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Q.동의보감은 몽정을 모두 병으로 보았나요?
아닙니다. 원문의 ‘몽설이 심에 속할 때’에서는 세 가지 물병에 비유해 경우를 나누며, 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한 경우는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구분은 당시의 생각을 보여 주는 비유입니다.
Q.밥과 죽을 먹으면 정이 늘어나나요?
원문은 곡식에서 몸을 기르는 바탕을 얻는다고 설명합니다. 특정 음식의 효능을 말하기보다, 매일의 식사가 몸의 바탕을 만든다고 본 기록입니다.
Q.정 장에 나온 보약이나 수련법을 따라 해도 되나요?
옛 처방과 수련법은 400년 전의 기록입니다. 원문도 경우에 따라 약을 쓰지 않거나 다른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실제 치료는 진료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출처 · 참고
- 허준,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제2장 「정」.
- 동의보감 편찬 위원회 편역, 『동의보감 1 내경편 (한글완역판)』, 학력개발사, 1988.
- 주요 참고 대목: 「정이 신체의 근본이 될 때」, 「정이 지극한 보패일 때」, 「오장에 모든 정이 있을 때」, 「정을 음식물로 보할 때」, 「정의 유설이 심에 속할 때」, 「몽설이 심에 속할 때」, 「몽설이 울에 속할 때」, 「정을 보하는 약이일 때」, 「정의 도인법일 때」.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